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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환 교수님, '첨성대는 단순히 천문관측대가 아니다'는 주장
2010-01-19
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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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8일, 교수신문에 조세환 교수님게서 1998년에 첨성대가 단순히 관측대가 아니라는 주장을 근거로 하여, 최근에 다시 조명되어 기존학설을 뒤집고 있는 관련 신문기사가 실려서 소개해 드립니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9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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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천문관측 용도 아니라 선덕여왕의 정치적 表象이었다”
화제의 주장_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 첨성대 기존 학설 뒤집어

2010년 01월 18일 (월) 15:15:48
우주영 객원기자 universe-wj@kyosu.net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

‘현존하는 동양 最古의 천문대’인 첨성대가 실은 천문 관측대가 아니란 주장이 한 연구자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 22일,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사학과)는 한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발표회에서 첨성대는 ‘선덕여왕의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물’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첨성대는 천문학에 대한 신라인의 앞선 혜안에 대한 상징이었으며, 이를 인정받아 1962년, 국보 제 31호로 제정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정 교수의 당시 주장은 발표 이전부터 국내 역사학계 뿐 아니라 천문학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정 교수는 이런 자신의 논지를 더 다듬어 최근 간행된 <역사와 현실>제 74호(2009년 12월)에「선덕여왕과 성조(聖祖)의 탄생, 첨성대」를 발표했다.

- 박혁거세 '나정'과 석가모니 모친 마야부인

그렇다면 첨성대는 무엇일까. 정연식 교수는 “첨성대를 우물과 마야부인의 몸이 겹쳐진 선덕여왕의 표상”이라고 주장한다. 물과 샘, 못, 우물 등은 탄생과 출산의 상징이다. 이 중 우물은 어머니의 産道와 닮아 출산과 탄생의 의미를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 이 때문에 신라에선 우물을 소중히 여겨 기념했고,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을 시조묘로 삼아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에 정연식 교수는 “첨성대 우물이 의미하는 것은 선덕여왕의 성스러운 조상의 탄생으로 추정”하며,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성조 박혁거세의 후손임을 알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본다.



사실 첨성대가 우물을 형상화한 것이란 주장은 1998년 조경학자 조세환에 의해 처음 제기됐었다. 원통형 지하부분 위에 정(井)자 모양의 네모난 틀을 가진 신라의 再賣井이나 고구려, 백제의 우물 형태가 첨성대 꼭대기 모양과 동일하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이어 2000년 김기흥 역시 첨성대는 우주목의 한 형태인 우주우물이라 주장한다.



그럼에도 첨성대가 우물을 형상화한 것이라 보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바로 당시 대부분의 우물이 일반적으로 바닥면과 윗면의 넓이가 같은 원통형이거나 바닥면이 윗면보다 좁았던 것에 비해 첨성대는 아래 부분이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병 모양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첨성대 제13단부터 제 15단까지의 한쪽에 뚫린 사각형 모양의 창구 역시 그 쓰임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우물설의 한계였다. 정 교수는 이 의문에 대해 “첨성대의 부풀어오른 아랫부분은 바로 마야부인의 엉덩이를, 중간에 있는 창구는 오른쪽 옆구리를 형상화한 것”이라 답한다. 그 근거는 무엇일까. 이에 정 교수는 “佛傳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도솔천에 머물러 있다가 윤회하여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태 안으로 들어갔”으며, 역시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싯다르타 태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때 첨성대가 마야부인의 몸을 상징한다면 첨성대의 창구는 마야부인의 옆구리란 증거가 된다. 또한, 마야부인이 西域 인도에서 동쪽을 향해 왔다는 것을 주지한다면 첨성대의 창구가 남쪽을 향해 있는 것 역시 설명이 가능해진다.

정설처럼 여겨졌음에도 첨성대의 천문대설을 끊임없이 괴롭힌 건 첨성대의 편향성이었다. 첨성대의 방향은 정남향이 아니라 기단부가 시계방향으로 19°, 찬구는 16°, 정자석은 13°돌아서있다. 이는 당시의 주요 건출물이 정남북을 맞춰 짓는 것에 비춰본다면 16°를 비뚤게 지은 것이다. 정 교수는 이 역시 “건축 당시 첨성대가 마야부인임을 알게 하려면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를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마야부인이 정확히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월성 앞길 지점에서 마야부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겐 마야부인의 옆구리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월성 앞길을 향해 선 마야부인은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가 사람들 눈에 뜨이게 하려면 몸을 왼쪽으로 약간 틀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여왕의 즉위에 대한 정당성 필요.
선덕여왕의 즉위와 첨성대 건립은 긴밀한 연관를 갖는다. 아들을 얻지 못한 진평왕은 말년에 결국 맏딸 德曼을 왕위계승자로 지명한다. ‘성골 남자가 다하여[聖骨男盡]’한 선택이었으나 여왕의 즉위는 삼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없었던 초유의 사건였다. 정 교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 상황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 특별한 의례가 즉위 초에 취해졌다. 國人들이 선덕여왕의 즉위와 함께 또는 즉위 직후에 여왕에게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尊號를 올린”것으로, “신라에서 왕에게 존호가 올려 진 일은 기록상으로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였다고 밝힌다. 그리고 첨성대 건립이 이어진다. 정 교수가 밝힌 대로 첨성대 건립은 “왕을 종교적으로 신성화 하는 작업”의 일환였고, 이 때문에 “신라 왕실의 성스러운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과 성골 왕실의 성스러운 시조 석가모니가 태어난 마야부인의 몸을 겹쳐 형성화”된 첨성대가 건립됐다. 첨성대는 곧 “선덕여왕의 表象”이었던 것이다.


- 첨성대는 선덕여왕의 탄생을 상징하는 ‘聖誕臺’

오랜 시간 첨성대를 천문관측대로 잘못 이해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소간의를 올려놓고 천체를 관측했던 관천대를 일명 첨성대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첨성대의 이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정 교수는 ‘첨성대’란 이름이 천문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는 종종 별이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고”했다고 한다. 진평왕 시절에 자장, 원효 등의 잉태 시에도 별이 떨어졌단 기록에 비춰본다면, 선덕여왕 탄생 시에도 별이 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 교수는 “물에 담긴 시설이나 우물과 아울러 별과 첨성대가 큰 인물의 탄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단 것은 평양 첨성대에 관한 『세종실록』지리지의 아홉 개의 못, 아홉 개의 별 그리고 첨성대에 관한 짤막한 기록에 모두 담겨있다”며, 그렇다면 “결국 첨성대는 선덕여왕의 성스러운 두 조상 박혁거세, 석가모니의 탄생과 아울러 성조황고(聖祖皇姑) 선덕여왕의 탄생을 상징하는 ‘삼위일체 聖誕臺’”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성조황고 여황제가 ‘선덕(善德)’이란 시호 그대로 “너그럽고 인자하며, 총명하고 재치 있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왕으로서는 작은 체구에 위엄이 없었으며, 여인으로서는 미모가 없었던 데다가 50세 전후의 늙은 나이로 왕위에 오르”다 보니 왕권을 안정시키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미 즉위 전부터 여왕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는 칠숙의 반란을 겪었고, 임종 역시 647년 정월, 毗曇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맞이했다. 선덕여왕의 권위는 이미 실추될 대로 실추된 뒤였다. 선덕여왕의 표상이었던 첨성대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통일신라가 들어서면서 나정 위에 크고 화려한 팔각 신궁이 세워지게 된다. 첨성대는 세워진지 채 50년도 안 돼 신화와 관념 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것이다.

이 연구가 발표되고 3일 후인 2009년 9월 24일, KAIST에서 열린 ‘제4차 첨성대 대토론회’에서 첨성대의 실체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이어졌다.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발돋움 삼아 첨성대가 천문대임을 증명하는 천문학자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이번 정 교수의 발표로 자칫 국내 역사학계와 천문학계가 대결 양상을 이루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천문대설에 관해 많은 반론이 제기된 게 사실이며, 이는 천문학계 내에서조차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첨성대가 신라인의 과학적 시설물이 아니라 해서 신라인의 천문학적 성과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 교수의 연구가 인정될 경우 교과서를 비롯해 첨성대를 천문대로 규정한 많은 기록에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점에서 이번 연구의 귀추가 주목된다.


우주영 객원기자 universe-w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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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환 교수님께서 노력하셔서 발의 된 조경기본법에 대한 정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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